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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상아탑에서 현장으로, 원주전통한지
작성일 : 2021-12-01 조회수 : 333
한지 장인을 만나다 - 11편

한지문화산업센터는 한지 문화의 아름다운 전통을 잇고 있는 전국의 한지 공방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지를 향한 열정으로 똘똘 뭉친 19개 공방의 역사와 철학, 특징 등을 하나하나 짚고 있죠. 그 세 번째 순서로 용인한지, 원주전통한지, 원주한지, 이상옥전통한지, 장지방 등 총 5개 공방을 소개합니다.

 
고궁한지 / 대성한지 / 대승한지마을 / 덕치전통한지 / 문경전통한지 / 성일한지 / 신풍한지 / 신현세전통한지 / 안동한지 / 용인한지 / 원주전통한지 / 원주한지 / 이상옥전통한지 장지방 / 전주전통한지원 / 천양피앤비 / 천일한지 / 청송전통한지 / 청웅전통한지
 

상아탑에서 현장으로, 원주전통한지

 
1968년 원주전통한지를 연 고 김영연 대표는 조선대학교 교수 재직 시절 한지에 관한 방대하고 깊이 있는 연구로 주목받았습니다. 이를 토대로 설립한 공방은 현재 40년 넘게 다양한 종류의 한지를 생산하고 있죠. 김영연 대표의 뒤를 이어 원주전통한지를 이끈 윤순희 대표는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왕성히 활동했습니다. 현재는 아들 김현수 대표가 가업을 이어 받아 운영 중인데 그야말로 ‘한지 가족’이라 할만합니다. 선대의 탄탄한 이론과 지성이 후대의 DNA에 체화된 모습입니다.
원주전통한지를 설립한 고 김영연 대표님은 조선대학교 교수님이셨다고 들었습니다. 학자로서 한지 연구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고 들었어요.
조선대학교 교수직과 도서관장을 역임하셨을 때 한지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한지의 역사, 닥나무의 품종 및 수확 방법, 관리법을 탐구하셨습니다. 단순히 경험과 반복적인 작업에만 의지하던 한지제조과정을 정확한 수치와 데이터로 남기신 것이죠. 지금도 아버님이 직접 손으로 쓰신 수 천장 분량의 원고지가 남아있습니다. 2006년에는 원주시의 도움으로 그 연구 결과가 <한지의 발자취>란 제목의 책으로 출판되기도 했습니다.


 


원주전통한지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요?
강점은 다양한 색상입니다. 1990년대만 해도 한지 산업은 순지 위주였는데 저희 어머니는 여기에 색깔을 입히는 시도를 하셨죠. 그 당시 색지를 인사동 원주한지특약점에 납품하셨고 이후 색지는 원주전통한지의 주력 상품이 되었습니다.
 
원주 지역이 한지 제작의 어떤 점에서 특히 유리하다고 보나요?
원주에 지명 중에 호저(好楮)란 곳이 있습니다. 좋을 ‘호’에 닥나무 ‘저’를 쓰죠. 그만큼 좋은 닥나무가 잘 자라는 지역입니다. 저희 아버님은 서울 분이셨는데 단순히 원주에 좋은 닥나무가 많고 물이 맑아 이곳에 터를 잡으셨다고 합니다
 
2002년에는 윤순희 전 대표님이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에서 `구김지 한지수의'로 은상을 수상하시기도 했습니다.
어머님께서는 27회 전승공예대전에서 은상을 수상하셨는데요, 작품성 자체보다 그 안에 담긴 깊은 뜻을 당시 심사위원들이 알아봐준 것이 아닌가 싶어요. 현실적으로 많은 유가족들이 고인에게 국산 안동포를 입혀드리고 싶어도 비싼 가격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저가 중국산 나일론 수의를 입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애환을 알아주는 작품이었다고 생각 합니다.


 

©최형락

어려서부터 한지와 매우 친숙한 환경이었을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한지공장은 놀이터였습니다. 닥 삶는 곳에서 여름엔 누나와 물놀이를 했죠. 단구동 공장이 바로 집 앞에 있었기 때문에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대여섯 살쯤 아버님이 살아계실 때도 공장에서 놀았다고 합니다.
 
왜 가업을 잇기로 결심했는지도 궁금합니다.
가업을 이어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은 대학생 때였습니다. 공장에서 방학 중에 한달 정도 어머님을 도와 잡일(땔감만들기, 뒷일하기)을 했어요. 사실 놀러갈 돈을 모으려고 했던 거였는데 이때 공장 사정이 힘들다는 걸 느꼈습니다. 어려운 상황을 외면할 수 없어 학교를 자퇴하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공무원이나 일반적인 직장인이 되길 원하셨던 어머니는 극구 만류하셨죠. 하지만 제가 제법 도움이 되었던 덕분인지, 말리다 지치신 것인지 몰라도 나중에는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셨습니다.


 

©최형락

시대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원주전통한지도 이런 변화한 시류에 따라 바뀐 부분이 있나요?
한지 업계는 사실 꽤 오랫동안 정체되어 있습니다. 나름대로 젊은 나이에 한지 공장을 운영하고 있지만, 상황이 여유롭지 않기때문에 미처 다른 곳에 눈을 돌리 여유가 없네요. 매달 근근이 운영하고 있어서 사실 큰 비용과 시간을 들여 변화를 주는 게 쉽진 않습니다. 하지만 작은 것부터 바꾸려는 노력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유통망도 전보다는 다양하게 변화하려 시도 중이고요. 팬데믹 종식 후에는 좀 더 새로운 것을 시도하려고 준비 중입니다.
 
김 대표님 가족에게 한지란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아버님은 아주 어릴 적에 돌아가셨기에 그 의중을 완벽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아버지가 남긴 연구 업적만큼은 후대에 값진 유산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어머님은 한지에 일생을 바치신 분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칠순이 넘을 때까지 현업에 계셨으니까요. 젊을 때는 양복입고 넥타이 맨 친구들이 부럽기만 하고 매일 염색 약에 물든 시커면 손톱을 보이기 창피한 적도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것들이 오히려 자부심이 됐습니다. 이 힘든 일을 오랫동안 해내신 부모님이 자랑스럽습니다.


주소ㅣ 강원도 원주시 우산로 180-22 (우편번호 26336)
전화ㅣ 033) 761-5193


* 이 인터뷰는 한지문화산업센터가 2019년 19개 한지 공방을 취재한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발췌·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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